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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대한 단상

여행하는신짱 2018. 9. 21. 16:30

여행에 대한 단상



일에 찌들고 몸도 마음도 지치는 일상만 계속된다면 우리의 생활은 어떻게 될까? 재미없고 고단한 삶은 되풀이되고 그야말로 사는 게 고역이 될 것이 뻔하다. 우리에겐 반복되는 일상을 깨는 무언가가 필요한가 보다. 여행은 바로 그런 것. 그래서 여행은 새롭고 아름다운 것을 찾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익숙함으로부터 벗어나 낯선 곳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일상의 틀을 깨고 여행을 떠나기까지는 복잡한 일이 한 둘이 아니다. 일을 잠시 멈추는 것이 쉽지 않고 돈도 시간도 그리고 마음의 여유마저도 갖기 힘들다. 망설임이 길어지고 여행에 대한 갈증도 깊어진다. 그래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여행을 떠올리는 순간 이미 여행은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떠나고자 마음을 먹었다면 편안히 쉴 곳을 찾아간다는 생각은 일단 버리자. 휴식 같은 여행은 없다. 내 집같이 편안한 곳에서 쉬고 싶다면 그냥 집에 있는 게 낫다. 굳이 떠나야겠다면 휴양지를 찾아 가면 된다. 대신 여행했다는 말은 하지 말자. 여행은 원래 번거롭고 피곤한 일이다. 하지만 불편함을 감수하고 떠나는 여행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들이 우리의 일상을 편안하게 해준다. 하다못해 '역시 집이 최고야'라며 집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지 않았는가.


여행은 무조건 즐거워야 한다는 생각도 위험하다. 물론 여행하지 않는 것과 비교하면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여행이 항상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여행지에서는 짜증나는 일도 생기고 예기치 않은 낭패를 겪을 수도 있다. 여행의 후유증 때문에 일상이 더 피곤해 질 수도 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더 커지는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즐겁게 지내기 위해 떠나는 것이 여행이라는 생각은 접어두고 떠나자.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경험만 하면 더 없이 좋겠지만 나쁜 기억도 훌륭한 추억거리가 된다.


흔히 여행을 계획할 때 유명 여행지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잘 알려진 곳은 실패할 가능성이 적다. 하지만 실패가 두려워서 모험을 하지 않는다면 더 큰 실패를 경험하게 될 지도 모른다. 이름난 여행지가 볼거리가 많은 것은 분명하겠지만 사람에 치이고 마음 상할 일도 많아질 가능성도 그만큼 커진다. 도시를 벗어나 찾아간 곳에서 번잡한 일상을 되풀이하기 싫다면 사람 많은 곳은 무조건 피하는 게 상책이다. 그래도 사람을 피하기 힘들다면 날짜와 시간을 잘 선택해서 인파를 피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굳이 오지여행을 고집하지 않더라도 한적하고 아름다운 여행지는 의외로 많다.


무작정 떠나는 것만이 여행의 참맛을 느끼게 해준다는 이야기도 있다. 잘 계획된 여행에서는 경이로움을 느끼기가 어렵다. 숙제하듯이 여행지를 따라가는 것은 무미건조한 길 찾기로 그칠 위험도 있다. 무작정 떠나는 여행이 묘미가 있고 더 낭만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무작정 떠나는 여행도 작정을 해야 할 수 있다. 형편없는 식당의 음식 때문에 속이 상하고 더러운 숙소에서 잠을 자고 나면 생각은 달라질 것이다. 치밀한 준비가 여행에 방해될 일은 별로 없다.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이라면 적어도 한 사람은 여행자가 되기를 포기하는 것이 좋다. 물론 그 한사람은 당연히 내가 되어야 한다. 여행의 기획자가 되고 가이드가 되어 가족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물하면 어떨까? 가능하다면 사전에 철저하게 여행을 기획해 보자. 여행의 목표를 설정하고 루트를 짜고 여행지에 대해 조사하고 음식과 숙소를 결정해서 우리 가족만의 여행을 만들어 본다. 가족을 위해 계획된 여행을 무사히 마치게 된다면 여행이 주는 감동은 분명 더 커질 수 있다. 사실 여행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과정은 최고의 취미생활이라고 할 만큼 즐거운 일이다. 출발은 기대와 설렘으로 가슴 벅찬 것이 여행이지만 올 때는 피곤하고 지치게 마련이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다음 여행을 계획해 보자. 그래야만 돌아오는 길도 즐겁다.


여행은 보고 듣고 담아내는 것이다. 책과 사진 속의 상상을 뛰어넘어 몸으로 직접 부딪히고 느끼는 살아있는 경험이다. 대단한 곳을 찾아서 멋진 풍광을 만나지 못한다 해도, 낯선 곳에서 불편한 경험을 한다 해도, 좋은 것뿐 아니라 보기 싫은 꼴을 만난다 해도,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찾아가는 것. 그것이 여행 아니던가.



( 2011년 6월 7일 여행에 대한 제 생각을 적어놓은 글입니다. 여행계획을 세우는 분들께 도움이 될까해서 올립니다. 여행에 정답은 없습니다. 각자 자신만의 여행을 만들어 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