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탐방기
신짱의 아메리카 탐방기
1. 미국여행의 두려움
사실 여행 꽤나 해봤다는 나는 미국여행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나라이고 좋아할 수 없는 나라인지라 가기 싫었다. 그래서 부시가 있는 한 미국에 절대 안가겠다고 선언까지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꼭 가야했다. 피치못할 사정이 생겼고 아이 때문에라도 꼭 가야했다. 다행히 부시도 없으니 핑계거리도 사라졌다.
미국여행을 하기로 했으나 앞이 깜깜했다. 걱정이 몰려왔다. 내가 운전사가 되야했고 안내자도 되어야 했다. 가족의 안전도 책임져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미국은 위험한 나라라는 선입견때문에 각종 위협에서 가족의 신변을 지키는 막중한 역할이 주어졌다. 언어도 큰 문제다. 소시적부터 영어에 담을 쌓아 놓고 살았기 때문에 의사소통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는 수 없이 최대한 정보를 수집해 말이 짧아도 여행에 차질이 없게 준비해야 했다.
2. 미국여행 준비하기 - 루트짜기
지도를 펼쳐보니 미국은 참으로 컸다. 주어진 15일을 최대한 활용해서 많은 지역을 둘러보는냐 아니면 몇 몇 곳을 집중적으로 여행하느냐 선택이 어려웠다. 일단 여행가이드북을 두 권 샀다. 몇 일간 책을 읽고 인터넷에 매달리니 미서부의 지역적 특색과 여행지에 대한 전체적인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결론은 15일이 결코 길지 않다는 것. 그저 두루 다니며 눈에 바르고 다니는 정도를 할 수 있는 기간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캘리포니아만 해도 남한땅의 4배가 넘는다. 갈 곳은 많으나 시간이 부족했다. 여행사의 미서부 패키지여행의 루트를 살펴보니 초인적인 스케줄이었다. 하루 500Km 정도를 차안에서 보내고 2-3시간 남짓 관광을 한다. 일주일이면 미서부의 볼거리를 다 본다. 대단하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는 일정을 단순하게 조정했다. 꼭 가야하는 곳과 숙박 할 곳을 정해 최단거리로 연결했다. 이동경로에서 너무 먼 곳은 과감하게 포기했다. 3대 캐년과 모뉴먼트밸리를 둘러보는데 최소 3박4일이 걸리지만 경비행기 투어 1일로 줄였다. 대신 꼭 가보고 싶은 여행지는 충분히 볼 수 있게 시간을 배정했다. 그렇게 해서 결정한 일정이 다음과 같다.
LA(1) PALOMAR Mt.(1) LASVEGAS(3) MAMMOTH LAKES(1) YOSEMITE(1) STOCKTON(1) SAN FRANCISCO(2) CARMEL(1) LA(2) MISSION VIEJO(2)
이번 여행의 루트를 표시한 지도이다. 루트를 짜는 데에 구글 만큼 편한 것은 없었다. 정확한 이동 경로와 거리, 예상 소요시간을 쉽게 보여준다. 게다가 Street View를 보면 거리의 모습과 주변 환경을 보여준다. 그래서 호텔을 예약할 때 실제 거리의 모습을 보면서 결정했다.
3. 미국여행 준비하기 - 항공권, 렌트카, 호텔, 투어예약하기
가장 시급한 것은 역시 항공권이다. 여행경비를 절약하는 첫걸음도 얼마나 싸게 항공을 잡느냐에 달려있다. 6월 11일로 출발 날짜가 잡히자마자 3월 중순부터 할인항공권 수배에 들어갔다. 탑항공, 와이페이모어, 클럽리치 등 대표적인 업체를 수시로 드나들면서 항공권 가격변동을 주시했다. 적절한 가격이라 생각되면 바로 예약하고 입금 마감일까지 좌석상황이 좋으면 취소하는 것을 두 세차례 반복했다. 그러던 중 인터파크투어에서 아시아나 10만원 할인 프로모션을 발견하고 바로 입금해 예약을 마쳤다. 대부분의 여행사에서는 빨리 예약하지 않으면 가격이 오른다고 협박을 하지만 입금 날짜를 조정하면서 최대한 버티면 뜻밖에 좋은 가격을 만나는 행운을 얻을 수 있다. 물론 출발일이 가까워 질수록 가능성은 희박해 진다.
항공권예약을 마치고 일정에 따라 렌터카를 예약했다. 여러 곳을 알아보았는데 Traveljigsaw의 조건이 가장 좋았다. Expedia나 Priceline에사 알아본 비용은 기본 렌탈비만 알 수 있어서 보험과 기타비용을 포함하면 가격이 많이 오른다. 그에 비해 Traveljigsaw는 보험과 부대비용을 포함한 패키지를 선택하면 보다 좋은 가격을 제시했다. 영국에 있는 기업이지만 한국인 직원과 직접 전화 상담이 가능하고 예약 후 비용이 추가로 하락해도 차액을 보상해줬다.
다음은 가장 어려웠던 호텔예약이다. 잠만자는 호텔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지만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하는 가족여행에서 쾌적한 잠자리는 여행의 성패를 좌우한다. 우리는 호텔의 결정을 위해 나름대로의 우선순위를 정했다. 아침을 주는 곳, 평점이 좋은 곳, 가격이 적당한 곳, 위치가 좋은 곳의 순서로 호텔을 알아보았다. 아침을 주지 않는 곳에서 숙박할 경우 주변에서 아침이 가능한 식당을 알아보고 찾아가는 일이 그리 쉽지 않다. 형편없는 빵이라도 먹어야 하루의 시작이 쉽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대부분 미국호텔의 아침은 빵, 시리얼, 오트밀, 커피, 과일 몇 조각이 고작이지만 시간과 비용을 아끼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었다.
두번째 선택 기준은 사용자 평점이다. 비싼 호텔이 당연히 좋겠지만 자유여행객에게는 사용자 입장에서의 실질적인 평가가 중요하다. 그중 가장 신뢰가 가고 사용후기도 많은 Tripadvisor가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후기를 꼼꼼히 읽어보면 호텔의 특징을 잘 알수 있고 실제 투숙에도 도움이 되어 좋았다.
다음 조건은 가격이다. 긴 여행에서 호텔비용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으니 가급적 싼 곳을 찾아야 했다. Priceline에서 예약하면 가장 싼 호텔을 찾아주겠지만 다른 세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주는 지는 알수 없으니 애시당초 포기했다. 대신 검색엔진을 이용해 비교견적을 내보니 적지않은 가격차이를 보였다. 그중 비교적 저렴한 곳이 Hotels.com 이었는데 예약과 취소가 자유롭고 후기도 풍부해서 제일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회원가입 후 날아온 10% 프로모션 쿠폰까지 사용할 수 있어서 주로 이용했다. 간혹 호텔에 직접 예약하는 것이 더 좋은 경우가 있기 때문에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직접 비교해 보면서 결정했다.
특히 라스베가스의 호텔은 숙박비의 편차가 워낙 심한 곳이다. 한국의 호텔예약 대행사를 이용하면 비교적 간단하지만 현지에서 직접 예약하는 것보다 2배 이상 비쌌다. 라스베가스의 많은 호텔들은 할인 프로모션이 많고 쿠폰코드를 여러 루트를 통해 제시하고 있었다. 쿠폰을 잘만 이용하면 한국인이 애용하는 Luxor호텔을 25달러면 구하고 180달러나 하는 O쇼, KA쇼도 100달러 아래로 구할 수 있는 곳이 라스베가스이다. 적당한 시기에 호텔의 한정 프로모션과 쿠폰을 잘 이용하면 20-30달러만 내고도 호화로운 호텔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 라스베가스이다.
예약에 가장 애를 먹은 곳은 요세미티 안의 숙소였다. 4월 초에 요세미티국립공원 안의 숙소는 이미 예약이 끝난지라 인근 지역을 알아보고 예약을 해야했다. 하지만 가격만 비싸고 거리도 꽤나 멀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수시로 빈방을 확인했다. 그러던 중 출발 3일전에 텐트촌의 빈자리 한 곳이 발견되었으니 정말 행운이었다. 물론 요세미티 안의 예약이 힘들었던 이유는 직접 가서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만큼 좋았단 이야기이다. 국립공원 안에서 잠자고 싶은 분들은 서두르시길.
호텔 결정에서의 마지막 단계는 위치와 주변환경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주로 구글맵과 Street View를 이용해서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작업이다. 일일이 확인하는 과정이 번거로운 점도 있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만 낭패를 면할 수 있다. 특히 어둡고 위험한 지역이나 시끄러운 곳을 피하는 실질적인 방법이었다.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쳐 호텔을 확정하기까지 기간이 꽤 많이 걸렸다. 조금은 귀찮고 번거로운 과정이었지만 실제 여행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기에 나름대로 만족스러웠다. 물론 숙소를 미리 정하지 않고 상황에 맞게 여행하는 묘미에야 미치지 못하겠지만 가족여행이라는 특성상 예약은 절대필수라고 생각된다. 방을 잡기위해 밤거리를 헤매다 겨우 냄새나고 시끄러운 방을 얻어 불편한 잠자리에 드는 일은 그리 좋은 추억거리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 중 그랜드캐년 경비행기 투어에 많은 돈을 지불했다. 한 사람에 209달러나 썼다. 하지만 내가 탄 비행기에는 똑같은 투어를 310달러에 온 사람들도 많았다. 어디에서 어떻게 예약하는 지에 따라서 이렇게 큰 차이가 났다. 미리 서둘러 준비하고 손품, 발품을 팔면 절약할 방법은 많다.
4. 기억에 남는 여행지
- 긴 준비기간 덕분에 여행 내내 큰 불편은 없었다. 시간 배정이나 루트도 넉넉하게 짜 놓은지라 쫒기지 않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다. 처음 LA공항에 도착해 렌트를 하고 딸아이를 만나러 가는 동안에는 긴 여행에 대한 부담감이 커서 긴장도 되고 불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계 어디를 가나 처음은 낯설지만 금새 익숙해지는 것은 다 비슷하다. 특히 미국은 잘 알려진 곳이고 문화적 이질감도 적어 그리 어려운 곳은 아니었던 것 같다. 지나가면서 보고 경험한 곳은 많지만 기억에 남는 몇 군데만 언급하고자 한다.
- 우리의 첫 여행지 팔로마 마운틴(Palomar Mountain).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잘 모르는 곳이지만 아들 녀석에겐 큰 의미가 있었다. 과학과 수학에 유달리 관심이 많은 고딩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책 [오레오 쿠키를 먹는 사람들]이 이곳 천문대(Palomar Observatory)를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나도 아들의 권유로 그 책을 읽어 본터라 감동이 남 달랐다. 1990년대까지 가장 컸다던 200인치 헤일망원경을 직접 볼 수 있어서 좋았고, 여행자들을 위한 갤러리와 안내소의 세심함에 놀랐다.
- 라스베가스는 아이들이 너무 싫어해서 당황했다. 다운타운은 너무 화려해서, 도시 주변은 너무 메말라서 정을 붙이기 힘든 곳이었다. 이번 여행일정 중 가장 호화판 호텔에서 머물렀음에도 아이들은 즐거워 하지 않았다. 도박과 담배 냄새를 너무 싫어하는 아들놈은 눈 붙일 곳이 없었나보다. 사막 한가운데 도시를 건설하고 사람들에게 위로와 즐거움을 주는 곳, 생산하지는 않지만 소비가 미덕인 곳, 어쩌면 가장 미국적인 도시의 전형이라고 느껴졌다. 라스베가스 인근의 불의 계곡(Valley of Fire)은 라스베가스에 있기 때문에 빛을 보기 힘든 곳이었다. 다른 지역에 있었다면 정말 아름다운 곳으로 찬사를 받았을텐데.
- 세계에서 가장 장엄한 대협곡이라는 그랜드캐년은 생각보다 그다지 놀라울 정도는 아니었다. 워낙 유명한 곳이고 사진에서도 많이 보았기 때문에 기대가 컸던 탓인가 보다. 노새를 타고 내려가 협곡 사이에서 래프팅을 해 볼 수 있었다면 참맛을 느낄 수 있었을텐데... 더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시간 관계상 라스베가스에서 직접 차를 몰고 가서 보는 것을 포기하고 경비행기를 이용했는데 오히려 더 잘 된것 같다. 땅에서 본 그랜드캐년은 일부분만을 볼 수 있고 전체적인 모습을 가늠하기도 힘들었다.
- 가족들이 뽑은 최고의 여행지는 역시 요세미티였다. 사진으로 담기엔 벅찬 절경중의 절경이고 자연의 웅장함과 섬세한 아름다움을 함께 지니고 있는 매력적인 곳이었다.
사실 요세미티를 만나기 전에 본 대부분의 산은 그리 아름답지 못했다. 비도 적고 땅도 척박한지라 미국의 산은 볼품이 없었다. 반면에 요세미티는 산과 바위, 숲과 폭포가 어우러져 탄성이 절로 나왔다. 우리나라의 산과 들도 참 예쁘지만 철저한 보존정책으로 잘 관리된 미국의 국립공원은 부럽기까지 했다. 요세미티 커리빌리지 텐트에서의 하룻밤은 낭만적인 시도였지만 트래킹을 제대로 못 해본 것이 아쉬웠다.
- 요세미티국립공원의 초입에 위치한 모노레이크는 뜻하지 않는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해발 2,000미터 산악지대에 고립된 이 호수는 돌이 자라나는 현상을 볼 수 있었다. 겨울에 주위의 산에 쌓인 눈이 녹아 호수에 모여들지만 흘러나가는 강이 없어 증발만 일어난다. 호수 주위에는 칼슘카보네이트가 모여서 Tufa라는 신비한 결정체를 만들어 냈다. 강알칼리성인 물 속에는 물고기는 없고 파리와 작은새우, 미생물들만 살아 남아있었다. 수십 만년 동안 진행되는 자연현상을 관찰하고 열악한 환경을 견뎌내는 생물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는 곳이었다.
- 버클리나 스탠포드는 대학이라기 보다 거대한 도시와 같았다. 누구나 한번쯤 꿈꿔 볼 만한 낭만적인 대학의 모습을 간직한 곳이다. 주변의 한인들이 자녀들을 데리고 와서 이런 곳에 다니려면 공부해라 압력을 넣어 본단다. 반면에 칼텍(CalTech)은 작은마을 같았다. 작고 아담해서 정겨운 느낌이 좋았다. 아들 놈이 제일 좋아하는 리처드 파인만이 오랫동안 교수 생활을 했던 곳이라서 압력행사에 도움을 준 곳이다. 오랜 전통과 어마어마한 기부금으로 만들어진 대학의 모습이라지만 우리 대학의 미래가 암울하게 느껴졌다.
- 미국인들이 가장 살고싶어하는 도시라는 명성에 걸맞게 샌프란시스코는 매력적인 도시임에 틀림없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언덕을 그대로 살린 도시에는 아기자기한 거리와 멋스러운 집들이 즐비했다. 살인적인 숙박비와 주차비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여러 친척들을 만나야해서 시내 관광을 충분히 하지 못해서 아쉬웠다. 샌프란시스코의 자랑이라는 금문교는 그냥 다리다. 엄청난 규모와 건설과 관련된 뒷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면 말이다. 그저 건축물에 지나지 않는 다리가 미국 관광의 상징이 되었다.
- 그밖에 작지만 아름다운 도시 몬테레이와 카멜, 산과 바다가 만나는 1번 해안도로, 과학을 쉽게 접근하도록 꾸며놓은 캘리포니아 아카데미 오브 사이언스, 생각보다 알찼던 헌팅턴라이브러리, 화려한 헐리우드 거리 등이 기억에 남는다.
5. 미국사회보고 느끼기
날씨 : 캘리포니아의 하늘은 맑고 푸르다. 햇살은 뜨겁다. 하지만 덥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평소에 거부하던 선크림을 잔뜩 발라야 했다. 구름끼고 비가오는 날씨가 그리워졌다. 라스베가스는 덥고 뜨겁다. 더워서 움직이기도 싫었는데 그곳에 살고있는 친구는 이만하면 시원한 날씨란다. 그런데 35도가 넘는 라스베가스의 더위에도 땀이 나지 않는다. 덕분에 옷을 몇 일씩 입어도 땀냄새, 발냄새 걱정은 안했다.
언어 : 역시 본토 영어는 어렵다. 멕시칸식영어, 한국식영어, 인도식영어... 영어도 종류가 많고 발음도 억양도 다양하다. 내가 영어로 말을 하면 할수록 의사소통은 어려워졌다. 내가 한마디하면 그들은 엄청난 속도로 대답을 하고 또 질문을 했다. 그러면 나는 할 말을 잃는다. 차라리 짧은 단어로 승부하는 것이 편했다. 손짓 발짓에 단어만 겨우 나열하니 날 우습게 보는 것 같았다. 그래도 말이 통하지 않으면 나보다 그들이 더 답답했겠지?
차별 : 매머드레이크의 호텔에서 한국인 아주머니를 만났다. 그 마을에서는 유일한 한국인이라고 한다. 호텔에서 일하는 그 아주머니는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더니만 큰 소리로 관리자들 욕을 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받았던 인종차별에 분풀이 하듯 떠들었다. 주변에 사람이 많아서 소리를 낮추길 바랬지만 지나는 직원에게는 얼굴을 맞대고 돼지새끼란다. 오랫만에 한국말로 욕을 실컷 했으니 얼마나 시원했을까?
쏘리 : 지나는 미국인들과 옷깃이라도 스치면 그들은 쏘리를 연발한다. 분명 내가 먼저 잘못했는데도 그들이 먼저 미안하단다. 작은 친절을 배풀어도 땡큐, 땡큐. 미국인들은 쏘리와 땡큐를 입에 달고 산다. 흔히 한국인들은 표현을 잘 못한다고 한다. 특히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라는 말에 인색하다고 한다. 그런데 감정표현이 과다한 사람들을 보니까 진짜 미안한지, 진짜 감사한지 잘 모르겠더라.
식당 : 음식 하나 시키는 데 왜 그리 많이 물어 보는지. 그냥 대충 주면 안되나? 식사를 다 끝내고 돈 내기도 힘들다. 아줌마 여기요!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냥 계산대에서 돈내면 안되나? 무엇을 주문해도 양은 엄청 나지만 메뉴판이 불친절하다. 사진도 없고 설명도 부족하다. 그나마 커피나 음료는 무한리필. 나중엔 꾀가 나서 커피 한 잔 시켜서 둘이 마셨다.
팁 : 움직이면 팁이니 항상 긴장해야 한다. 팁 안주면 뒤통수에 욕을 해댄다나. 종업원들은 기본급으로 최저임금 수준만 받으니 팁으로 먹고 살아야 한다고 한다. 2009년 미국의 최저임금은 7.25달러(8,700원). 팁 없이 최저임금만 받으면 정말(?) 살기 힘들겠다.
최저임금 : 올해 우리나라 노동자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4,110원 그나마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의 수가 200만 명이 넘는다. 미국처럼 처벌을 강화하면 지켜질래나.
음식 : 세계 각국의 식당들이 즐비하고 음식이 다양해서 선택의 폭은 넓지만 맛은 그럭저럭. 대체로 우리보다도 짜게 먹는 편이다. 하기야 국물이 없으니 음식이라도 짜게 먹어야지. 대부분의 나트륨을 국과 찌개에서 섭취하는 우리의 식생활이 오히려 문제 아닌가. 그런데 미국 고유의 음식은 뭘까?
햄버거 : 온갖 부위의 다진 소고기와 유전자조작이 의심되는 냉동감자를 한 끼니에 충분하도록 칼로리를 맘껏 높여 빠르게 조리해낸 음식이다. 미국인에게는 간식이 아니라 주식이다. 가능한 햄버거는 먹지 않으려고 버텼다. 그런데 미국음식인데 한 번 먹어보기로 했다. 신선한 소고기와 생감자를 그자리에서 직접 조리해 내 놓는다는 IN-N-OUT BURGER를 찾아 한 끼를 때웠다. 배고팠다. 역시 우리에게는 간식이었다.
렌트카 : 역시 장거리여행에는 미니밴이 최고다. 공간이 넓어 답답하지 않고, 자고 싶을때 눕기도 편하다. 짐칸도 넉넉해 트렁크 5개쯤은 문제없다. 가족여행에 미니밴을 선택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 하지만 너무 편해서 잠만 자다가 경치를 놓치는 폐단이 있다.
네비게이션 : 한국 네비게이션에 비하면 미국의 네비는 장난 수준이다. 수준 낮은 네비게이션을 빌리는 데 하루 14달러. 15일동안 200달러 넘게 주고 빌렸다. 나중에 마트에 가서보니 150달러에 팔더라.
운전 : 미국인들은 운전을 잘한다. 보행자의 안전이 최우선이고, 교차로에서의 양보는 기본이다. 정해진 도로법규를 지키는 것이 몸에 밴듯하다. 어려서부터 운전을 잘 배운 탓일까? 아니면 살벌한 벌금때문일까? 경찰에게 걸릴 가능성이 적은 고속도로에서는 엄청 빨리 달린다. 무서울 정도로.
주유 : 미국에서 처음 기름을 넣는데 애를 먹었다. 카드를 긁으니 ZIP코드를 누르랜다. 우리 집코드를 누르니 자꾸 에러가 난다. 그동네 ZIP코드를 넣어도 에러. 할 수 없이 카운터에가서 카드를 내니 ID카드를 보여달랜다. 한국 운전면허증을 보여줘도 모르겠다고 안된다나. 여권을 보여주니 얼굴을 비교해보고 이제야 OK. 그런데 번호를 물어본다. 무슨 번호? 아! 주유기 번호. 겨우 주유를 하려고 펌프를 작동하는데 쉽지않다. 기름의 종류를 선택하고 레버를 당기고... 번거롭고 힘들다. 역시 우리나라 주유소가 좋다. 기름도 넣어주고 휴지도 준다. 게다가 실업율도 줄여주지 않는가. 다음번부터는 작전을 바꿨다. 차를 대고서 곧바로 카운터에가 현금을 내밀고 두 마디만 하면 된다. "Number 3, 40 dollar! OK?"
산과 들 : 캘리포니아의 산은 나무가 적다. 온통 바위와 말라버린 풀만 자란다. 들판은 노랗다. 푸른 초원을 보기 힘들다. 태양은 뜨겁고 비가 적어 메말라 있다. 끝이 보이지않는 푸른 초원과 농장은 스프링쿨러가 없으면 유지하기 힘들다. 그런데 그 많은 물은 어디서 날까?
물 : 미국은 물부족 국가이다. 가뭄과 사막화가 심해진단다. 그래도 일상생활에서 물을 아끼는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전문가들은 캘리포니아에서 물부족을 해결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농장을 줄여서 농사에 필요한 물을 줄이거나 바닷물을 정제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물부족국가 : 정부는 한국이 물부족국가라서 수자원을 개발하고 댐을 건설해야 한다고 뻥을 친다. 그러나 UN의 지구환경보고서 어디에서도 한국이 물부족국가라는 구절은 없다고 한다. 오히려 댐에의한 생태계 단절과 파괴를 우려하여 강의 관리에 다양한 사회집단의 참여를 권고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일회용품 : 미국은 일회용품의 천국이다. 식당이나 병원 심지어 가정에서도 일회용품을 엄청나게 사용한다. 그렇다고 분리수거가 잘 되는 것도 아니다. 미국이야말로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쓰레기를 만드는 나라이다.
담배 : 캘리포니아에서는 실내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곳이 자기집밖에 없다. 식당, 호텔, 공원, 심지어 술집도 금연구역이다. 내가 아는 사람은 LA 한복판의 50층이 넘는 라운지에서 술을 먹다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일층까지 나와서 담배를 피워야 했다고 하소연했다. 반면에
라스베가스는 흡연자들의 천국이다. 카지노 뿐 아니라 호텔 로비에서부터 담배 연기를 피할 수 없다.
인터넷 : 호텔이나 카페, 심지어 거리에서도 무선인터넷이 잡힌다. 땅 덩어리가 커서 무선인터넷 말고는 방법이 없었겠지만 속도는 좀 느리다. 미국사이트야 그런대로 볼 만하지만 네이버에 들어가려면 속이 터지도록 답답하다. 네이버나 다음의 초기화면은 화려한 정보로 가득한데 구글의 초기화면이 단순한 이유를 이제야 깨닫다니.
옷차림 : 헐리우드 영화에서 봄직한 화려한 옷차림은 헐리우드에서도 발견하기 어렵다. 그저 평범한 티셔츠 차림에 반바지가 대세. 금발의 날씬한 미녀와 멋진 남자들보다 엉덩이가 산 만한 남녀가 더 많다. 여기에서는 통통한 내 배는 애교로 통한다.
화장실 : 화장실은 어디를 가나 깨끗했다. 대부분 변기커버가 따로 있었고 세제와 종이수건이 떨어진 곳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한인타운의 마트에 가보니 화장실이 장난이 아니게 더럽더라.
한인타운 : 미국의 어느 도시엘 가나 한인타운이 있었다. 한식이 그리운 여행자들은 본토와 거의 똑같은 맛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한글로 쓰인 간판이며 거리풍경이 꼭 우리의 80년대를 보는 듯했다. 교포들의 향수에 맞춘 컨셉이 아닐까? LA의 한인타운은 어둡고 삭막했다. 그래서인지 여행자들은 가급적 가지 말란다.
월드컵 : 교포사회는 월드컵의 열기로 뜨거웠다. 교포들은 빨간티셔츠를 입고 함께 모여서 한국을 응원했다. 미국인들은 월드컵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요세미티빌리지의 한 피자집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식당 안에도 선 채로 피자를 먹고 있는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빌리지 안에서 유일하게 TV가 있는 식당인 듯 했다. TV에서는 NBA FINAL 경기가 한창이었다. 월드컵에서 한국과 미국은 좋은 성적으로 예선을 통과했다.
교포2세 : 미국에 사는 사촌들을 만났다. 어릴적 미국에 갔거나 미국에서 태어난 동생들 4명을 만나 즐겁게 수다를 떨었다. 어눌한 한국말과 영어를 섞어가며 한국과 마국사회의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과연 그들은 한국인일까? 미국인일까? 한국말의 실력 수준만큼 미국인과 한국인의 사고방식이 섞여있는 모습이었다.
홈리스 : 한때 진보운동의 성지였던 샌프란시스코는 홈리스와 게이의 천국이다. 거리의 급식소에는 긴 줄이 늘어져 있고 밤거리엔 골목 귀퉁이에 쓰러져 잠든 홈리스를 쉽게 발견 할 수 있었다. 집을 빼앗겨 거리로 쫒긴 이들은 연금도 의료보험도 없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인 미국은 부자와 가난한 자들이 나뉜 양극화의 사회이며, 빈곤대국이기도 하다.
의료보험 : 세계에서 가장 의료환경이 열악한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의 의료보험 회사는 엄청난 자금력과 로비로 막강한 권력이 되어있다. 미국 의사들은 잘 살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미국인 중에 비싼 보험료와 의료비로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인구가 5,000만명 쯤 된다. 오바마의 의료개혁 덕분에 전국민 의료보험 시대가 온다고는 하나 2,500만명 정도는 의료 사각지대에 남게 된다. 오바마는 한국의 의료보험을 자신들의 국가 의료시스템 개혁의 베스트 모델로 꼽는다. MB는 우리나라의 의료시스템을 미국식으로 바꾸고 싶어 안달이다.
기부 : 미국 대학에 가면 유명한 사람의 이름을 내건 건물들이 많다. 게티센터는 재벌의 기부로 조성된 복합문화공간이다. 개인의 저택을 공원으로 개방한 헌팅턴라이브러리를 가서는 큰 규모와 엄청난 소장품에 입이 벌어졌다. 기부와 관용으로 대변되는 미국식 똘레랑스는 분명 본 받을 만하다. 하지만 재벌들의 기부는 미국 사회의 탈정치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약자에 대한 배려와 불의에 대한 저항의식에는 걸림돌이 되어온 것도 사실 아닌가?
반미감정 : 다 큰 아들은 미국을 싫어한다. 어려서부터 부모의 영향을 잘 못 받은 까닭이다. 헐리우드의 거리를 보고도 시큰둥했다. 왜 배우들의 손도장을 보고 즐거워해야 하는지 반문했다. 라스베가스에서 밤거리 쇼를 보자는 데 호텔에서 잠만 잤다. 지는 소녀시대를 보면 난리를 치면서 말이다. 미국의 강대한 부의 원천이 자동차나 공산품이 아니라 비즈니스와 서비스산업에서 오는 것이니 잘 봐두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회를 정확히 보는 것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의 차이를 잘 납득하려 하지 않았다. 미국이라는 나라와 미국사회, 미국시민의 의식은 분명 다른데 말이다.
관점 :미국인이 생활 속에서 보는 관점과 짧은 여행에서 느낀 나의 의견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세계 속의 미국은 깡패국가지만 미국인이 보는 미국은 자유와 기회의 땅이라는 사실은 분명했다.
6. 나에게 여행이란
- 음주가무와 '안'친하고 스포츠나 밤문화와도 거리가 먼 덕분에 여행을 좋아하게 되었다. 특히 여행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과정은 최고의 취미생활이라고 할 만큼 즐겁다. 출발은 기대와 설레임으로 가슴 벅찬 것이 여행이지만 올 때는 피곤하고 지치게 마련이다. 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 다음 여행을 계획한다. 그래서 돌아오는 길도 내겐 즐겁다.
- 무작정 떠나는 여행의 묘미와 낭만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해 본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무작정 떠나는 여행도 작정을 해야 할 수있다.
- 나의 여행에는 술도 없다. 술이 없으니 싱겁고 재미없다. 밤에 할일이 없으니 아침도 빨리 온다. 아침이 빠르면 하루가 길다. 술이 없어서 여행하기에 충분한 시간을 버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 나는 개인적으로 생활비가 거의 들지 않는다. 고작 담배값 정도. 그래서 우리 직원들에게 이야기하곤 한다. 술값, 옷값을 절약하면 누구나 해외여행을 할 수 있다고.
- 여행은 체험이다. 책과 사진 속의 상상을 뛰어넘어 직접 부딪히고 느끼는 살아있는 경험이다. 보기 좋은 것만 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까지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여행은 막연히 알고있던 미국사회를 직접 보고 느끼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 혹시 여행을 계획하는 분들이 있다면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여행지를 결정하고 루트를 짜고, 숙소를 정하고, 식당을 물색하는 일이 성가시고 귀찮게 느낀다면 내게 기회를 넘겨라.